아야나미 레이와 쿨데레,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이다
봄 기운이 완연하다가 그것을 시샘이라도 하듯 추위가 극심했던 하루였다. 이러한 기상 속에서도 우리 대학에서는 '새내기 맞이 주간' 행사로 동아리 부스들이 학생회관 주변에 즐비해있었다. 마침 오늘 수업도 하나 뿐이어서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친구 K와 함께 부스들을 둘러보았다. 자연과학계 동아리에서는 우주 탐사회나 아마추어 무선 통신 동아리에 지원을 하고, 창작계 동아리들을 둘러보았다. 눈에 무엇보다 먼저 들어온 것은 에반게리온의 아스카 피규어였다. 곧바로 신청 원서를 쓰기 위해 부스 내부로 들어갔다. 부스 테이블에 즐비 되어있던 만화책들... 신청 원서를 쓰면서 동아리 설명을 듣고 있었다. 어느덧 원서의 마지막 질문지에 도달했을 때 살짝 당황했다. '최애캐를 온 영혼을 담아 써주세요...' 나ㄴ..는ㄴ...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파란 펜으로 힘차게 '아야나미 레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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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착하고 차분하다. |
과방에 가서 레포트를 끄적이다가 고등학교 동창 출신의 친구 S1에게 전화가 왔다. "영완, 수업 끝났냐..? 같이 돌아다니자 할거 없으면." S1도 나와 같이 수업이 하나 뿐이라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만나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동아리 이야기는 오늘의 주된 화제였다. 내가 서브컬쳐에 발을 들여 놓도록 튼튼한 돌다리를 놓아주는데 한 몫한 S1에게 아까 있었던 그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 블로그를 아는 그는 '아야나미 레이'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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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남자 주인공인 호구 신지 주변에는 여캐가 많이 등장하는데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원래 부터 서브컬쳐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힙합 가수로 소문이 나있던 데프콘이 지상파 방송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 아스카의 피규어를 들고 나온 적이 있다. 내 주변의 여러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대부분 아스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물론 일본에서 에반게리온 10주년 기념으로 실시한 캐릭터 인기 투표에서는 아야나미 레이가 아스카를 제쳤지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방영되던 90년대에는 확실히 아스카의 팬층이 더 두터웠던 것 같다.
아야나미 레이는 작중에서 차분하고 조용한 캐릭터이다. 인간의 형상을 했지만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서 그만두도록 하겠다. 아야나미 레이와 같이 이런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매력을 보이는 것을 '쿨데레' 속성의 모에 요소가 있다고들 한다. 쿨데레들은 단순히 무감정한 것이 아니라 겉은 그렇게 보일지라도 속은 겉과는 다른 아주 깊고 따듯한 무언가가 있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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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는 레이의 모습 |
신세기 에반게리온 6화를 보면, 신지가 레이의 사출된 엔트리 플러그로부터 직접 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르겠어.."라는 레이의 말에 신지는 "그냥 웃으면 돼"라고 답한다. 그리고 신세기 에반게리온 전체를 통틀어 몇안되는 장면인 '레이의 웃는 모습'을 6화에서 보게된다. 항상 무표정한 레이가 웃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마치 내면의 따듯함이 누적 된 듯, 자연스럽고 따듯한 미소를 신지에게 건넨다. 에반게리온을 처음 봤을 때는 사실 이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던 장면 중 하나였다.
* * *
항상 싸늘하고 찬 공기만 내뿜으며 다닌다고 쿨데레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면만 따듯하다고 남들이 쿨데레라고 알아주고 좋아해주는 것도 아니다. 모두 아니메 속 이야기니까. 현대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인간관계는 소홀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내가 겉모습만 보고 무심코 지나쳐버린, 내면만큼은 뜨겁게 불타는 어느 '쿨데레'가 있지 않은가.
다가서보자,
"그냥 웃어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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