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6일 일요일

#1 베이퍼웨이브, 음악의 새 지평을 열다가 실패한 이카루스

베이퍼웨이브,

...음악의 새 지평을 열다가 실패한 이카루스



  베이퍼웨이브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였다. 그 날도 할일 없이 내 채널을 관리하면서 유튜브의 자동 재생 기능을 켜놓았고, 초점 없이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유튜브의 자동 재생 기능을 켜놓을 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대어를 기다리는 낚시꾼 마냥 괜찮은 음악이 걸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종의 취미인 셈인 것이다. 꽤나 시간이 흐르고 '그만 자야지..'라고 느꼈을 즈음, 난생 처음 듣는 장르의 음악을 듣게 되었다. 


 
Macintosh Plus 의 Floral Shoppe 앨범 아트

 심지어 앨범 아트마저 기괴했다. 고전 양식의 대리석 석상에 일부러 잘못 쓴 듯한 일본어, 촌스러운 색상, 아무 의미없이 배치된 마치 VHS화면에서 따온 저화질의 사진. 처음에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나 나왔을 법한 어덜트 콘템포러리(Adult Contemporary)나 소프트 락 계열 앨범 중에 하나겠지....'라고 넘겨 짚고 지나쳤다. 

* * *

 시간이 흐르고, 몇 주 전 즈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이 앨범이 생각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앨범 이름과 프로듀서의 이름을 기억할리가 전혀 없었던 나로써는 굉장히 답답한 상황이었다. 구글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앨범 아트 뿐. "Greco roman marbles, pink background, VHS..." 아는대로 적어 넣었다. 

 검색을 하면서 엄청난 사실들을 깨닫게 되었다. 넘겨짚은 사실에 의하면 이 앨범은 20년 이상이 되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한 나에게 이 앨범은 2011년에 릴리즈된 디지털 앨범이고, 2010년대를 시작으로 이런 계의 음악이 '베이퍼웨이브'라는 장르로 꽤나 활성화된 모양이었다.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베이퍼웨이브 reddit도 있다. 새 아티스트들이  새 음악을 계속 '생산'해 내고있다.

 2010년대 초반 일종의 밈으로 형성되어있던 복고풍 미술(?) 양식 시펑크(Sea punk)에서 파생되었다. 시펑크가 언더그라운드 장르로 남아있기를 원했던 텀블러나 4chan의 커뮤니티 유저들은 시펑크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시펑크의 종료를 외치게 되고, 이 때 시펑크는 여러갈래로 파생되게 된다. 이 때 베이퍼웨이브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베이퍼웨이브의 어원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출시되기로 하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출시 되지 않아 없어져 버린 제품을 뜻하는 베이퍼웨어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른 이야기로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모든 단단한 것은 공기 중으로 날아가게 된다'를 인용하여 작명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장르는 굉장히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지는 않아도 상당히 자본적인 것에 냉소를 품고 있는 듯하다. 



대칭적이고, 윈도 로고가 있고, 대리석상이 있으면 된다.

....물론 한국인 아티스트는 아니다.

....예술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베이퍼웨이브' 장르가 대단한 것인가? 어원을 보기만 한다면 굉장히 심오하다. 언뜻 보면 굉장히 복고풍인데다가 심미적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처음에는 상당 부분 매료 되었다. 하지만 음악을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베이퍼웨이브 아티스트들이 만드는 음악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다 들어본 노래다. 그렇다. 표절이 도둑질이라면, 이들의 음악 행위는 '우아하게 리듬 체조를 하며' 도둑질 하는 것에 불과했다. 유튜브 채널 FrankJavCee의 영상 'How to Make Vaporwave'에서 이를 꼬집어 풍자하고 있다. 이 장르를 그는 '80's elevator music and commercial music digitally slowed down with effects...'라고 재평가한다.  




AESTHETIC



 2016년인 지금까지 수많은 베이퍼웨이브 음악이 쏟아져나왔고, 이제는 그 가치는 초창기보다는 많이 하락했다. ( reddit 페이지는 활동이 계속되고 있지만... ) 초창기의 베이퍼웨이브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잘 이어나갔더라면, 음악의 새 지평을 펼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장르가 꼬집아 비판하려 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의 원리에 자기 발을 스스로 걸게 되어 버렸다. 태양을 향해 막 비상하려다가 추락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카루스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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